11장 가축의 치명적 선물
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p.336
인류 역사에서 치명적인 세균의 중요성은 유럽의 신세계 정복 그리고 뒤이은 신세계 인구 감소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전쟁터에서 유럽인의 총과 칼에 죽는 경우보다 유라시아의 병원균에 감염되어 병석에서 누운 채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그 병원균에 대부분의 원주민과 그들의 지도자가 쓰러졌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들의 사기마저 떨어져 원주민의 저항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1531년에 168명을 데리고 페루 해안에 상륙해, 인구 수백만 명의 잉카제국을 정복하기 위해 나섰을 때도 비슷하게 음울한 행운이 뒤따랐다. 피사로에게는 행운이지만 잉카인에게는 불운이었던 천연두가 1526년경 육로로 들어와 많은 잉카인을 죽인 뒤였다. 이 때 우아이나 카파크 황제와 황태자마저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 3장에서 살펴보았듯 왕위가 공석이 되자 잉카는 우아이나 카파크의 다른 두 아들, 즉 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가 벌인 내전에 휩쓸렸고, 피사로는 그 기회를 이용해 분열된 잉카를 정복했다.
책을 읽고
비디오 테잎을 빌려서 영화를 보던 시절, 첫 장면에 나오던 말이 있었다. '무분별한 비디오 시청은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내용이었다. 지금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들릴지 몰라도, 당시에는 꽤 진지한 경고였다. 여기서 '호환'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일을 말하고, '마마'는 바로 천연두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마마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한번 걸리면 열에 몇은 죽었고, 살아남아도 얼굴에 얽은 자국, 즉 곰보 자국이 남았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곰보 얼굴은 흔한 풍경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에 천연두가 퍼졌는데,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병자호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인조가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삼전도에서 절을 하던 그 무렵, 청나라 병사들 사이에 천연두가 돌아 서둘러 철수했다는 기록도 있다.
17세기에는 마을 어귀나 사찰 앞에 장승을 세워 역병을 막고자 했다. 장승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마마를 쫓는 간절한 바람이 깃든 민중의 방역문화였다.
그러다 1880년, 의사 지석영이 일본에서 종두법을 배워와 본격적으로 천연두 예방 접종을 시작했고, 이 방법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인류가 천연두를 완전히 박멸했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제는 전설처럼 들리는 마마의 공포, 하지만 그 흔적은 오랫동안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남아 있다.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총균쇠 독서 후기 열다섯 번째, 13장 필요의 어머니 (4) | 2025.07.04 |
|---|---|
| 총균쇠 독서 후기 열네 번째, 12장 청사진과 차용한 문자 (6) | 2025.07.02 |
| 총균쇠 독서 후기 열두 번째, 10장 드넓은 하늘과 기울어진 축 (6) | 2025.06.25 |
| 총균쇠 독서 후기 열한 번째, 9장 얼룩말과 불행한 결혼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 법칙' (6) | 2025.06.23 |
| 총균쇠 독서 후기 열 번째, 8장 사과가 문제였을까? 인디언이 문제였을까? (10) | 2025.06.16 |